그렇더라

지극히 개인적인 둘째 고민 정리

도미니크 2022. 6. 30. 05:26

둘째 고민은 낳은 후에야 끝난다고 한다. 나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외동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 글은 그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써둔다.


어떤 사람이 둘째를 낳았을까?


내 주변 한정이긴 하지만 둘째 낳은 사람들은 아래 사항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았다.

1. 대부분 둘째는 비계획 임신으로 생겼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운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성별 확인하면서 한번 더 운 사람도 있었다.

2. 계획적 임신의 경우 첫째와 보통 3-4살 터울이 많았다. 추측컨대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고 부부가 조금 살만해질 때. 미치도록 힘들었던 육아의 고통은 점차 잊히고, 너무 예뻤던 아기 모습만 추억으로 그리워질 때. 바로 그 즘에 '둘째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생기는 듯하다.

3. 비교하긴 어렵지만 첫째 육아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사람들이 둘째를 갖는 경향이 있다. 가령 첫째가 순한 편이었거나, 첫 아이 육아 때 친정/시댁 도움을 충분히 받았던 집은 둘째 계획에 더 관대하다. 그리고 첫째로 딸을 낳은 부모가 첫째로 아들을 낳은 부모보다 둘째 임신을 더 고려하는 것 같다. (아들 딸 육아 난이도에 차이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이고, 아들 둘은 극한 육아라는 소문이 부모를 망설이게 한다.)

4. 주거 환경의 경우 30평대 청약 당첨된 분들이 많았다. 수도권 기준 3-4억대에 30평대 새 아파트를 구해서 저금리로 원리금을 상환 중이었다. 그게 아니면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방에 거주했다.

5. 처가댁/시댁 식구들이 육아에 도움 줄 여력이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이집 하원을 도와주시는 건 물론, 운전이 가능하셔서 수시로 왕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자녀 계획에 가장 중요한 건 나와 내 와이프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다. 과연 우리 부부가 둘째를 키울만한 그릇인가. 육아에 적합한 성향인가. 일단 나부터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1. 나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여러 사람을 만나거나 아이들과 우당탕탕 노는 시간을 못 즐기는 건 아니지만 금방 피곤해진다. 회복의 측면에선 혼자 카페 가거나 영화 관람, 드라이브하는 시간을 더 선호한다.

2. 나이가 들고 책임이 늘면서 소위 '안전빵'을 선택하려는 마음이 크다. 여기서 안전빵이란 내 식구들이 최소한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 개인적으론 나 혼자 벌어서 내 와이프와 아이 하나는 어떻게든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풍족하진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덜 불안해도 되는 지금이 좋다.

3. 엄마 노후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낙관적인 울 어머니는 어떻게든 다 살게 된다고 말하시지만 나는 아니다.  책임이 커진 만큼 최악의 상황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늘 엄마에 대한 책임을 염두하고 산다. 엄마는 남편 없이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노년엔 행복하셔야 한다. 그리고 혹여나 훗날 병원을 내 집처럼 오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내 경제력이 부족하다면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나는 울 할머니의 병원비와 약값에 대해 얼추 안다. 그래서 앞서 2번 항목과는 달리 엄마 노후에 대해선 여전히 경제적 불안함을 느낀다.

4. 결혼하고 아이도 있지만 여전히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다. 평생을 직장에 매여 살기보단 내 것을 해보고 싶다. 나는 모험에 대한 미련을 마음 한편에 갖고 산다. 그러나 아이가 둘이 되면 나는 더욱 안정 추구형이 될 것이다. 결국은 계속 직장을 다니게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특히 일이 너무 하기 싫은 날.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티는 모습이 내가 되긴 싫다. (비록 지금도 그러고 사는 중이지만.)

5. 젊은 날의 3년이 노년의 3년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둘째가 생기면 잠 덧, 이유식, 기저귀...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좀 개인 시간이 생기나 싶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곤 소중한 30대를 애 둘 키우는 데 다 소진하게 되겠지. 와이프와 데이트, 가족들과 여행, 취미 생활, 친구들과의 모임... 다 뒤로 밀리겠지. 나는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 오히려 이것들을 좀 더 젊을 때, 새로운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때 겪고 싶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웬만한 자극에는 심드렁해질 테니까. 그래서 노는 것도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놀고 싶다.


정리를 하자면,


우리 부부는 30평대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부모님으로부터 육아 도움받을 여건도 안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도 아니다. 나란 사람은 내 개인 삶도 추구하고 싶어 한다.

결국 15개월 된 아들 하나만 잘 키우는 게 내겐 좀 더 유리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겐 안될 이유만 찾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가능한 종합적인 시각에서 본 결론이다.

지금 우리 세대와 과거 부모 세대는 다르다. 옛날엔 애 둘씩 키우는 게 당연한 시대였고 그것이 노멀이었다. 인터넷도 거의 없던 때라 내 주변 삶이 곧 표준이었고 실제로 다 비슷한 수준으로 살았다.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 동시에 경제 성장률은 높았고 현재보다  미래가 더 밝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과거에 비해 즐길거리는 세분화되었고 삶의 형태도 비혼, 딩크 등 다양해졌다. 이 모든 건 SNS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젠 선택지가 여러 개란 걸 모두가 안다. 무엇을 고를지 고민할 여지가 생겨난 것이다.

반면 과거에 비해 리스크는 늘어났다. 물가 상승, 고용안전성 감소, 양극화, 늘어난 수명 대비 불충분한 노후, 연금 고갈, 부모님 노후 및 병원비 등. 어느 하나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들 투성이다. 과거 세대가 정년퇴직 후 '국민연금 + 아파트 한 채' 엔딩을 봤다면 지금 세대는 그마저도 어렵다.

나도 아이 이쁜 걸 안다. 동시에 삶에는 아이가 주는 행복 말고 다른 종류의 행복도 많다는 사실을 안다. (편안한 마음, 내 개인 삶의 의미 추구, 내 그릇만큼 책임지는 삶에서 오는 성취감 등) 내게 이 두 행복의 사이 저울질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현재 우리 세 식구끼리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한다.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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