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더라

현장직 vs 사무직

도미니크 2022. 1. 9. 16:53

일부 기업에선 관리직으로 채용했으나 일정 시간 현장 부서로 발령 내는 경우가 있다. 엄청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도 그런 케이스였다. 내가 좀 더 어릴 때, 특히 학생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는 직업보다는 몸 쓰거나 좀 더 활동적인 일이 내 적성에 맞는 거 같아". 단순한 생각이었다. 둘다 겪어보니,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던 점이 많았다. 사무직과 현장직은 장단점이 명확했고, 이 글은 내 경험을 토대로 썼다.

현장직 장점

1. 칼퇴 가능. 대게 그날 일을 다하면 정시 퇴근해도 눈치 볼 일 없다.

 

2. 마음이 편하다. 퇴근 후 회사/일 생각을 안해도 된다. 일과 일상의 완전 분리가 가능하다. 경영진 미팅, 타회사와의 협업 등으로부터 자유롭다. 사내 정치를 신경 쓸 일도 적다.

 

3. 추가 수당이 있다. (교대근무 하는 경우, 본인 전문 기술 자격이 있는 경우)

 

4. 휴가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편이다.

 

5. 여럿이 함께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나 하나 없어도 다른 작업자가 커버 가능하다. 작업 중 실수해도 옆 선배가 도와주시는 경우가 많다.

 

현장직 단점

1. 건강 악화 및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손가락 뼈에 금이 간 사고, 장비에 부딪혀 피멍 든 일, 손톱이나 발톱 들린 일, 손바닥 물집, 머리 부딪혀 몇 바늘 꿰맨 경우 등 현장에서 여러 사례를 봤다. 누적 데미지도 무시 못한다. 안 좋은 자세를 반복적으로 하면 허리와 손목 등 관절이 닳는다. 화학 물질 취급 현장은 방독/방진 마스크를 잘 써야 하는 데 생각보다 번거롭다. (숨쉬기 힘들고 덥다) 특히 보안경은 잘 안 쓰는 경우도 많아 눈이 공기 중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아마 이런 물질들이 몸에 누적되면 영향이 있겠지. 그리고 혹시라도 교대근무를 한다? 이건 계속하면 몸 다 망가진다. 젊을 땐 체력이 되니 좀 할 수 있겠지만 지속 가능 측면에선 영 아니올시다다.

 

2. 일 자체가 깔끔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출근하면 작업복으로 갈아 입는 것이다. (매번 환복 하는 게 귀찮기도 하다.) 특히 퇴근 후 약속이 있을 때 바로 가기가 좀 그렇다. 안전모 써서 머리는 눌려있고 땀냄새와 화학 물질 냄새가 몸에 배어있다. "쩔었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따라서 번거롭지만 샤워는 필수다. (개인적으론 화학 물질 냄새가 내 차 안에 밸까 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참고로 현장에서는 문손잡이나 컴퓨터 마우스 등 여러 사람이 잡는 물건도 깨끗하다는 보장이 없다. 누군가는 손 안씻고 만졌을 확률도 있으니까.

 

3. 그날 하루 체력이 고갈된다. 아무리 활동적이고 동적인 사람도, 몸쓰는 게 일이 되면 지치게 된다. 퇴근 후 집 가면 꾸벅꾸벅 졸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달까. 퇴근 후 운동 같은 취미는 하기 어려워진다. 그날 작업에 따라 체력이 아예 안 남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몸이 힘드니 뭔가 할 의지 조차 사라진다.

 

4. 아재 문화를 어느정도 감안해야 한다. 다 그런건 아닌데 현장 40대 중후반 ~ 50대 남성 중 일부 그런 사람이 있다. 입이 거칠다거나 믹스 커피와 담배를 입에 달고 살면서 대화 주제는 술, 담배, 골프, 여자, 주식 이야기만 하는 아재들이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아재들 말 듣기가 거북하다. 참고로 이런 아재들이 팀에서 꽤 높은 자리 혹은 입김이 센 경우가 많다. 일반화 할 순 없겠지만 사무실보다는 현장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접했다.

 

5. 자율성이 떨어진다. 일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기 어렵다. 여럿이 다같이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선배들 속도에 맞추어야 한다. 잠깐 전화를 하러 가거나, 은행 일을 보러 가는 것도 조금 눈치 봐야 한다. ('쉬었다 하자!' 거나 '이제 다시 일하자!'는 보통 고참 작업자가 정한다.)

 

6. 추운 날 추운 곳에서, 더운 날 더운 곳에서, 미세먼지 많은 날은 밖에서 일하기도 한다. 역시 건강에 좋지 않다.

 

7.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허드렛일도 많다. (작업장 정리 청소 등은 따로 청소 업체를 통해 하지 않는다. 보통 작업자가 한다.)

 

사무직 장점

1. 깔끔하고 쾌적하다. 출근해서 옷갈아 입을 필요 없고, 퇴근 전 회사에서 샤워할 필요 없다. 퇴근하고 집 도착해서 바로 육아 투입되어 아이를 안아줄 수 있다. (현장에 있을 땐 샤워부터 하고 아이를 안아줬다.) 이게 은근 장점이다.

 

2. 일부 업무에 대해선 일의 속도를 내가 자율적으로 조절 할 수 있다. 각자 개인 업무분장이 어느정도 분명한 편이라 가능한 점이다. 따라서 내 일정과 컨디션에 맞게 일할 수 있다. 여유가 더 있으면 사내 메신저로 친한 사람들과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할 수 있다.

 

3. '나의 일' 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자부심이 있다. 1인분의 몫을 (강제로) 하게 되어 오는 성취감이 있다.

 

4.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오히려 퇴근 후 운동을 따로 해주어야 밸런스가 맞다)

 

5. 개인 책상과 서랍이 있어 물건 보관이 편하다. (보통 현장직은 별도의 공간에 "락커룸"이 있다. 이 락커룸은 상당히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

 

6. 고질적인 허리와 목 디스크만 조심하면 안전 사고 위험은 적다.

 

7. 일 성격에 따라 재택근무가 가능할 수 있다.

 

사무직 단점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커진다. 내 업무에서 뭐 잘못되면 내 탓이다. 여기서부터 발생하는 단점들이 꽤 많다.

 

1. 부서by부서이긴 한데, 칼퇴가 어렵다. 내가 일을 미루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내일의 나다. 야근 수당 받지 못하는 야근을 종종 한다. 특히 내 업무 분야 내에서 일터 지면 회사에서 저녁 먹는다. 집 가도 일해야 한다. 주말도 컴퓨터를 켜야 할 수 도 있다.

 

2. 내가 담당자인 만큼 여러 부서로부터 문의 전화/메일을 많이 받는다. 간혹 높으신 분들의 전화도 받는다. 접하는 사람이 많은만큼 누군가의 눈밖에 나지 않게끔 신경 써야 한다. 눈치 볼 일이 많다. 현장직이 거의 팀원들과만 소통하면 되는 반면, 사무직은 여러 부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인간관계를 더 조심해야 한다.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은 이게 부담이다.

 

3. 보고가 많다. 팀장 부서장 경영진 성향에 따라 스트레스 정도가 크게 좌우된다. 흔히 마이크로 매니징이라하여 일일이 간섭하는 리더 밑에 있으면 힘들어진다.

 

4. 큰 회의에서 발표하는 일도 더러 있다. 발표 부담스러운 사람에겐 스트레스가 된다.

 

5. 일이 계속 쌓인다. 과제가 계속 나온다. 일의 우선 순위를 잡고 처리하지만, 또 다른 일이 우선순위를 치고 들어온다. 그럼 일하던 도중 스탑하고 미루게 된다. 일이 쌓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나중엔 머리가 jamming 된다. 뇌정지가 온다.

 

6. 현장보단 돈을 덜 받는 케이스가 많다.


쓰다보니 현장직 단점 분량이 가장 많아졌다. 그러나 분량과 무관하게 두 직군 모두 쉽지 않다. (직장 생활이 쉬울 리가 있나) 그냥 사람 성향에 따라 자기에게 약간 더 또는 덜 맞는 포지션이 있을 뿐이다. 사무실에서는 현장으로 가고 싶어 하는 차장님 과장님들도 많다. 반대로 현장에서는 내게 "이제 이런 일 안 해서 좋겠다"라고 말한 선배들도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늘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 같다. 어쨌든 현장과 사무실. 선택의 기로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반응형